법이 바뀌다 (히 7:11-22)
'법없이도 살 사람' 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러한 사람은 아마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특히 고도로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는 직간접적으로 법은 우리 삶에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고 우리의 많은 결정에 관여한다. 11절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현대를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율법'은 더욱 삶을 얽매었는데, 구약의 여러 계명들을 말하지만 문자적으로는 νόμος 즉 법을 의미한다.
그런데 법이 바뀌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제사 직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제사 직분 보다는 법이 먼저일거라 생각하지만, 이 '법'을 행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제사장직이었기 때문에 이 제사 직분 (priesthood) 이라는 체계가 바뀌면 법도 따라서 바뀌는 것이고, 이것은 법 자체가 이미 바뀌었음을 말한다. 법치와 왕정은 분명 구분이 있지만, 절대정권 하에서는 왕이 곧 법인데, 법을 집행하는 체계 즉 왕이 바뀌면 법은 필연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에는 모세를 통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이었지만, 이러한 것은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고, 사실 이것은 이미 모세 이전에 있던 멜기세덱 즉 '원래'의 것임을 밝힌다.
그런데 이 '바꾸어졌은즉 μετατιθεμένης'의 원어는 신약 여기에 단 한번 나오는 말인데 (히브리서에는 신약에 한번만 등장하는 단어가 여럿 있다) '대치하다'를 의미한다. 즉 옛 제사 직분이 대치되고 있고 (현재진행형 수동태) 따라서 법 역시 그를 대치하는 다른 법으로 '대치함'이 '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되어진 것을 마치 지금 바뀌는 것 같이 들리도록 현재진행형 시제를 쓰는데, 당시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아직도 옛 계명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것이 바뀌고 있다.
16절은 흥미로운데 '육신의 계명의 법'이라는 말을 한다. 따지고 보면 모세의 율법은 '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몇몇 주의 종들의 사역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을 주셨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 백성들은 다만 율법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 요구될 뿐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율법은 '육신'에 속한 것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그것이 율법의 한계였다.
하지만 주님은 다르시다. 그의 제사장직 혹은 제사직 체계 (priesthood)는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불멸 ἀκατάλυτος' 역시 단 한번 나오는 말인데, '멸하지 않다, 혹은 뒤집어 엎을 수 없다'를 의미한다. 지난 율법은 대치될 수 밖에 없었지만, 주님의 생명은 뒤집어 엎을 수 없는, 취소할 수 없는 혹은 대치될 수 없는 어떠한 것이다. 이 '되었다'는 완료형으로 이미 끝났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17절은 5:10을 다시 되풀이 하며 강조하고, 18-19절은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고 말한다. 엡 2:15에도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라고 선포하는데, 이제 연약하고 무익한 과거 법은 완전 폐기되고 새롭고 온전하게 하는 생명의 법으로 대치되었다 (롬 8:2).
사실 율법은 이스라엘 중심으로 이스라엘 만을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율법을 지키는 이들을 '유대인'들이라고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지만 그것이 '연약하고 무익'한 것은 우리를 살리지 못하고 (고후 3:6) 계속 죄를 기억하게만 하기 때문인데 (롬 3:20) 이제까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말하며 구약 체계에 도전하는 듯하게 보이던 히브리서가 7장에서는 아예 완전히 율법이 폐기 되었음을 선포한다. 옛 제사 직분이 폐기되지 않으면 새로운 주님의 제사장 체계는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21절은 주님께서 옛 제사장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맹세하심과 언약으로 되셨고 따라서 '영원히 제사장' 되셨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더이상 '대치'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이제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고,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22절). 즉 이 모든 사실은 과거 옛 언약 보다 더 좋은 언약이 되신 주님을 보여준다.
주님, 이러한 진리의 말씀이 나에게 교훈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영이요 생명이 되게 하소서. 주를 따르는 모든 주의 종들이 이제는 더 이상 대치될 수 없는 영원하신 제사장이신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소망 안에서 강건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