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 릴레이 – 스위치가 아님.  능력 받기 위함

  • All is good, all is possible.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주어졌으며, 내일은 소망한다.

  • 누구라도 먹을 수 있게 호텔 로비에 마련해 놓은 과자를 그걸 모르는 시골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져가 먹는다면 그것은 도둑질일까? 

  •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 사람들이 왜 서로 으르렁대며 사는가...
  • 산이 있다면 골짜기가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면 산이 이를 것도 믿어야 합니다.
  • 귀신 이야기는 재미있다. 나름 교훈도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 귀신, 전생 등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면 생각이 흐려져서 명목상의 크리스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Watchman Nee의 The Spiritual Man 에서

    Hence when one truly turns to the Lord he "believes with his heart (not mind) and so is justified" Rom 10:10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이지 생각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 It is amazing what you can accomplish if you do not care who gets the credit.
    Harry S. Truman
    누가 공로를 인정받는지를 따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해리 트루만
  • “There is no limit to the amount of good you can do if you don't care who gets the credit.” 
    ― Ronald Reagan.
    누가 공로를 인정받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성공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로날드 레이건
  • 기드온은 승리 후에 내부에 분열이 생길 조짐이 보이자 자신을 낮춘다.
  • 세상에서 성공의 이치는 도전하여 싸워 이기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사실 '주식회사'의 개념이 생기기 전에도 물론이거니와 16세기 첫 주식회사가 생긴 후에 '지도력' 개념과 더불어 동시에 부각된 개념이 '협동심'에 기반을 둔 이익분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전 삼성전관의 대표였던 손욱 회장은 삼성의 성공은 '관리의 삼성'에서 '전략의 삼성'으로 발전, 그리고 다음 단계로 '창의의 삼성'이 완성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리와 전략은 '지도력'으로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사업이 발전하면서 '창의력'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각 개인의 창의력을 끌어내고 또한 그것 하나 하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문화의 틀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협동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세상이 '주식회사'의 비밀을 통해 '지도력'과 '협동심'을 실천하는 반면 교회는 오히려 그러면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견이 생길 때 과연 기드온 처럼 서로를 낮추는가? 아니면 자신의 공로와 의로움을 나타내려고 서로 물어뜯는 힘든 싸움을 하는가? 아니면 세상 정치판 처럼 2인자가 되어 자신의 뜻을 지도자를 통해 관철시키려면 교활한 마음을 갖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하신 말씀을 믿어야 할 것이다.

  • 짧은 길이라고 항상 빠른 길은 아니다. 빠른 길을 가야하나 짧은 길을 가야하나... 그 선택이 나에게 있나...
  • 소명은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대하듯 섬기는 가에 대한 문제이다. 냉수 한그릇을 건낼 때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가. 나는 내 아내를 섬기는가 이용하는가. 내 아이들을 섬기는가 부리는가. 직장 동료들을 섬기는가 마지못해 일하는가... 아, 물론 예스맨이 되는 것은 아니지...
  •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시작하면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내가 오늘 '돈의 화신'을 끝냈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에 연기들도 너무 잘했다. 악역들 조차도 눈부신 연기를 펼쳤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복수를 주제로 하고, 아마도 그 이유는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초졸하게 하는 복수가 있는가 하면 '돈의 화신'처럼 용서로 복수를 승화하는 이야기도 있다. 더우기 마지막 한 명은 뉘우치고 다른 한 명은 끝까지 악에 받쳐 죽는 모습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좌우의 강도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아보니 이 드라마를 쓴 작가 장영철 정경순 부부는 크리스천. 아내가 재미있게 본 '넝쿨당' 작가 역시 크리스천 이란다. 흠...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어서 기분 좋다.

  • 하나님의 뜻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아나? 그 뜻을 알기 위해 우린 먼저 십자가가 필요하다. 온전히 죽어야 하나님의 뜻이 보일 수 있으니.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도 없다고 하지 않으셨는가?
  • 내가 '생각'하고 '동의'하는 것이 나의 믿음이 아니다. 시험을 통과할 때 남는 것만이 진정 나의 신앙이다. 내가 지키고 있는 믿음은 과연 무엇인가?
  • 구름타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 박사증을 소지하지 않으셔서 지금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신다. 목회학 박사학위가 뭘까? 목회란 것은 섬기는 것인데 박사없으면 섬기지 못하나? 예수님의 12제자들도 다 한국교회에 오면 수준 미달이다. 아....
  • 요즘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내 판단으로 '꼭 그래야만해'가 얼마나 많았는지...
  • 어릴 적 부른 노래 중에 노아가 산위에서 배를 만들었다는 가사가 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니 노아는 산위에서 배를 만들지 않았다. 단지 홍수 후에 방주가 아아랏산에 머물렀다는 기록 뿐이다.
    노아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방주를 만들었을 것 같다. 그래야 그것이 증거가 되기에. 산위에서 만들면 소문만 나지 보러올 사람은 없으니까. 

    크리스천이 증인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수도원 운동처럼 자신의 영성만을 위해 한적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제대로 된 수도원 운동은 항상 지역사회 및 인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교회들이 산 위에 있지않고 바로 집 옆에 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라는 뜻일텐데 과연 방주같은 증거를 보여주는 교회들은 얼마나 될까? 또한 방주를 짓는 노아와 같은 삶을 사는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될까?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라는 벌써 몇십년 된 찬송가 가사도 생각나는 아침이다...

  • 사랑하고 존경하게 하소서.
    나에게 상처를 준 이들도 존경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 2차 대전 기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 시베리아 등 타지에서 죽어간 많은 독립투사들은 지금 러시아 및 옛 소련 위성 국가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들에게는 꿈같은 일, 이루기 힘들게 생각된 일들 이었을 것이다. 새예루살렘과 새하늘 새땅도 지금은 아직 꿈 같은 일... 하지만 소망 속에서 미리 볼 수 있는 실체이다.
  • 똥개와 명견의 차이는 적앞에서의 모습에서 보게됩니다. 똥개는 마구 울부짖고 이리뛰었다 저리뛰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명견은 묵직하고 깊은 소리로 으르렁 거리며 상대의 눈만 노려 보며 고요합니다. 모든 상황을 묵직하고 깊게 반응해야합니다. 고난에 대한 대처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반발하는 것과 반응하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반발하면 좌절, 낙심, 원망등의 감정에 매몰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상황과 감정을 분리하여 반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잠시 흔들릴 수 있겠지만, 전능자의 손을 인식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할 것을 개선한다면 상황이 더 좋아집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믿음으로 반응해야합니다. 똥개같은 성도가 아니라, 명품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 '신은 죽었다'라고 니체가 말했던가.
    니체가 신에 대해 다른 언급을 했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말은 당시 기도교적 사회 배경 에서 성장한 그의 사상의 패러다임의 한계를 보여주는것 같다. 적어도 그는 이말에서 세가지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신은 없다'가 아니라 '죽었다'로 말함으로 그는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다만 그의 사상 속에서 신은 죽었다.
    둘째 본래 신은 불멸의 존재이기에 만약 신이 죽었다면 다시 살 수 있다는 부활 사상도 그는 묵언하에 인정한 것이된다.
    셋째 '죽은 신'은 예수시기에 예수의 신성도 또한 인정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 또한 부정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 부정의 한 이면에는 부인할 수 없는 그 분의 존재를 내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 화장실 낙서
    신은 죽었다 - 니체
    니체는 죽었다 - 신
    둘 다 걸리면 죽는다 - 청소 아줌마
    ㅎㅎ
  • 예수 믿고 구원 얻는 다는 것

    예수를 알고 (정보) - 믿고 (수긍) - '다시' 알고 (지식과 경험) - 믿는다 (확신과 의지함의 실천)

    1. 예수가 누구신지 알고 또 믿는 것
    2. 예수가 하신 일과 그 약속을 알고 또 믿는 것
    3. 그 믿음으로 실천적 삶을 사는 것 (예를 들어 논리적으로 손해볼 일도 '믿음'으로 행하는 것 - 예배 참석, 남을 도와줌, 새치기 안하는 것 등 남을 배려하는 것, 윤리적인 문제들, 환경보호 등등)

  • 구원 (구할 구 도울 원) Salvation, σωτηρία(쏘테리아)
    1. 적의 공격과 협박으로부터 안전함을 얻음
    2. 두려움과 죄책감 등 여러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영혼의 평안을 얻음
    3.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얻음 등등

    나를 구원할 만한 믿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할 믿음도 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 
    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4-16]'

  • 난 축복의 통로가 아니야 아니야.
    난 축복의 줄기야 생명의 가지야.
    포도나무 예수님의 생명이
    줄기차게 흐르는 가지야.
    주의 뻗어나감이야.
    그 생명이 복이 되어 온 세상을 덮을
    뻗어 가는 가지야 줄기야.
  • 위대한 일을 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더 위대한 것은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 행복은 어머니가 구워주신 고구마를 먹는 것.
    행복은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 것.
    그 둘은 정말 helper다. assistant가 아닌. ^^
  • 선교든 뭐든 마음만으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은 소용이 없다...
  • 독도는 왜 일본 땅이 아니고 한국 땅인가?

    일본어로 타케시마, 즉 죽도라고 불리는 독도는 전혀 대나무가 없다.
    우리 말 독도는 말 그대로 돌덩이 섬. 즉 정확히 표현한 지명이다.

    일본인들은 어거지 주장을 하려면 그 지명부터 바꿔야할 것이다.

  • If you are not involved, we do not know how God is diligent and faithful in doing His work. The gospel has been indeed preached to all 244 countries throughout the world.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분이 얼마나 신실하고 부지런한 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벌써 지구상 244개 나라에 복음이 모두 들어갔다고 하네요.
  • God seems to be so extravagant. He made only one earth in the whole vast universe, and it seems waste to me. He made each male, throughout history, whether men or animals, produce gazillions of sperms with sophisticated DNA info built in each of them, but most of them eventually would end up being wasted, and that seems a waste to me, too. But I believe the gospel of Yeshua is not wasted nor the works of the saints for forever
  • 내가 그리스도를 살려고 했을 때, 나는 실패했습니다.
    다만 이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일 때, 영광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 말세에 내가 주께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능력이나 은사입니까? 주의 사역을 위한 물질입니까?
    내가 인내를 구합니다. 주님을 더 알고 주와 교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에서 인내하게 하소서. 그리스도가 오늘 나의 인내 되심을 누리게 하소서.
  • 나는 창조과학자도 아니고 창조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기에 창조과학에 대해 잘 모르고, 물론 진화론자들이나 일반 과학을 더 신봉하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결국 그들 모두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에)  단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을 성경대로 믿고 있다.
    아무튼…
    지금 보고 있는 별은 ‘지금’ ‘거기에’ 있는 별이 아니라,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수 억에서 130억년 동안 우주를 여행해 온 빛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다.  이론상 별의 수명이 수 십 억년으로 간주했을 때, 지금 보는 많은 별은 사실상 현재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빛을 좀 더 앞당겨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면 아마도 별과 우주의 비밀을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 상대성이론으로 ‘상대적’인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현재 139억년 정도로 추정된 우주의 나이도 우리 기준의 절대적 시간이 아닌 상대적인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우주에서의 시간 개념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시간과는 완전 별개의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사이, 그리고 첫째 날부터 셋째 날과 천체가 ‘만들어진 후’의 사이의 시간도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상대적인 시간, 또 동시에 진정 절대적인 하나님의 시간일 수 있다.
  • 지구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이러한 현상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별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만약 태양 표면에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태양의 자체 빛 때문에 다른 별은 관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 미래학의 태동은 처음에는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의해 발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면으로는 발전학과 연관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미래개척에 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다가 오는 세계에 대해 준비하고 개척하는 것은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도 고려해볼 문제다.
  • 부모의 말은 아이의 미래요 아이들에 대한 예언이다. 오늘 아이들에게 좀 긍정적으로 말하길...
    '이러면 안돼!' 나 '너 이러면 앞으로 ... 못해!' 보다는 '그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형식으로...
    에... 그리고 아내도 칭찬해야지. ^^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창녀건 살인자건 성혼란자건 그외 누구에게든 열려 있다. 하지만, 진정한 복음이라면 그들을 그대로 두진 않는다! 그의 몸 된 교회도 마찬가지다.
  • 세월호에 대해

    동의는 하지만 세월호 문제가 '안전수칙' 만의 문제였다면 그리 심각하지 않았지만 추후 대응이 어처구니 없었던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사회 정의나 올바른 정치 혹은 안전수칙 등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무력함을 보게 되는 것이 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아이들 불쌍하고 그 가족이 가련하고 늑장대응한 공권력이 괘씸하지만 역시 제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깨달을 때 주님을 다시 바라볼 수 밖에 없네요... 

  • 내가 불씨가 되어 불을 일으키려면 장작 밑에 있어야 한다. 장작 위의 불씨는 꺼지지만 장작 아래에서는 불길을 일으킨다. 그때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며 모든 장작을 태운다. 
  • 시간
    계시록의 많은 부분이 과거완료형식으로 기록되었다.  즉 앞으로 되어질 일이지만 요한은 그것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모두 과거 시제를 썼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기에,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지금처럼 보시는 하나님이시며, 시간을 초월하신다.  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이 광활한 우주에서 시간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지만 언제가 시간은 멈출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멈춘 세상, 그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세상일까?  아마도 시간을 초월한 상태가 될 것 같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이다.
  •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실적으로 공의와 정직이 실현되지만, 이것이 인간적인 방법과 정치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여호와의 영’ 즉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주시는 선물이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짐승들에게 조차 하나님의 해방이 선포되고 아담의 죄로 인한 그들의 저주가 풀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 끝나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해 믿는 이들은 ‘참음으로 기다린다’ (롬 8:19-25)
    주님, 적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의 모습을 띠고 정치적인 안정을 도모하겠지만 결국 인간의 노력으로 끝날 것을 압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믿음을 가지고 참으며 기다리는 인내의 삶이 필요합니다.  그 날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시고 그리스도께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듯 믿는 이들에게도 성령의 부으심과 채우심이 충만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현실 안에서 순종하며 산다.  잠언의 말씀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말씀인데, 특히 외부로 부터의 위협이 존재할 때는 비현실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공의 아래 있는 것은 마치 산상 수훈의 복을 구하는 것과 같아서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의 기준을 지양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게 한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가치관을 가치고 사는 참된 회개의 삶이다.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전혀 다른 일들이 주위에서 벌어진다 해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규율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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