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대해 나누려는데 골치가 아프다. 오늘 생명의 삶 제목처럼 “거짓을 분별하는 방법은 ‘참’을 바로 아는 것” 즉 주님을 바로 알면 이단은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후죽순 처럼 생기는 이단들에 대해 모두 공부할 수도 없고, 다만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면 거짓은 폭로된다.
베드로는 1절에서 앞으로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는데, 백성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생겼던 것 처럼 ‘너희 중에’ 있을 것을 밝힌다. 그러면서 ‘이단’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단어가 재미있다. 한자적인 의미로는 다를 이 끝 단 異端 즉 ‘끝이 다르다’는 의미인데, 한자어 자체로는 성경적 의미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道). 1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 2 [같은 말] 이단자(2. 전통이나 권위, 세속적인 상식에 반항하여 자기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여 고립되어 있는 사람). 3 <종교> 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이론이나 행동. 또는 그런 종교.” 등으로 정의했다.
1절 말씀에서 ‘너희 중에’라는 말이 암시하듯 첫째는 먼저 기독교 내에서 분파한, 다른 교리를 가지고 갈라진 이들을 말한다. 그래서 자신들을 기독교라고는 하지만, 교리로는 ‘정통’을 부인하고, 이미 있던 교계에서 자신들을 분리한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와는 상관없는 이상한 종교 집단들, 예를 들어 소위 뇌호흡이나 단수련 등은 사실 ‘이단’으로까지 승격(?)시킬 필요는 없고 ‘사이비’로 규정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실 가장 큰 이단은 이슬람교 같다. 시간적으로 기독교 후에 생긴 이슬람교는 그 경전 쿠란 내용의 많은 부분이 성경을 왜곡하고 카피한 것이 많다고 한다.
헬라어가 좀 더 재미 있는데, ‘하이레시스’라는 말로서, ‘교리적으로 틀리다’ 혹은 ‘이단’이라는 뜻의 영어 ‘heresy’의 어원이 된다. 이 말의 어원은 ‘하이레오’ 인데, 그 뜻은 특이하게도 ‘선호하다, 선택하다, 투표로 택하다’ 등의 뜻이다. 그래서 ‘하이레시스’ 본래 의미 역시 ‘선택, 택함, 그룹을 지음, 여러 의견으로 인해 갈라짐’ 등의 뜻이다. 그래서 ‘교리’적인 문제 보다는 사실 ‘분리’의 의미가 더 크다. 물론 교리가 다르기 때문에 분리를 하는 것이겠지만, 교리가 조금 다르다고 반드시 분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분리’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보통 ‘Basic Christianity’ 혹은 ‘Mere Christianity’라고 해서 기독교의 기본을 공유할 때 약간의 의견 차이는 있지만 그 안에서 공통분모를 가지는 것은 서로 약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교파가 생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과연 예를 들어 이단의 대표인 여호와 증인, 통일교, 몰몬교 그리고 요새 시끄러운 신천지 등만 이단이고 교파와 교단으로 ‘갈린’ 소위 ‘정통교회’들은 문제가 없을까? 역사를 봐도 답이 나오고 또 성경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정말 조금 다른 교리로 얼마나 서로 피를 흘렸는가? 작은 교리의 차이와 해석의 다른 시각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성경을 보면, 특히 고전 1:13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 말하며 그 바로 앞절에는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라고 한다. 즉 ‘선택, 선호, 당을 지음’을 경고하고 있다. 오늘로 말하면 ‘나는 장로교, 나는 감리교, 나는 침례교, 나는 순복음교에, 그리고 나는 (그것들도 아니고 또 다른 선호에 의해) 그리스도에 속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더우기 목사로서 섬기려면 다른 교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고 혹은 같은 교파 내에서도 교단에 따라 합동이니 통합이니 분리하고 그에 따른 제약이 만만치 않다.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이 문제를 쉽게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느니, 각자에 맡게 선택해야 한다느니.. 그런데 그것이 바로 '선호', 하이레시스, 이단이다!
정말로 성경으로 돌아간다면 이 ‘교파’의 문제가 실은 ‘이단’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로만캐톨릭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거기에는 정말이지 ‘교리’적인 문제가 많기에.) ‘교파’는 ‘분열’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 이 ‘분열’의 문제는 ‘음란’의 문제이다. 2절 원어에는 ‘호색’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신기하게도 개역에서는 이 말을 포함시켰다. ‘이단’을 말씀하다가 갑자기 ‘범죄한 천사’ ‘노아 때 세상 사람들’ ‘소돔과 고모라’ 등을 말씀하며 이 ‘이단’의 문제가 결국은 ‘음란’임을 폭로한다 (7절). ‘음란’이 심각한 이유는 그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결국 ‘멸망하는’ 것이고, 그 원인도 마음이 ‘나뉘어’ 하나의 대상 즉 자신의 배우자만을 사랑하는 것에서 떠나는 것에 있다. 영적으로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떠나 그 외 여러 가지 것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교리나 교권이나 부정한 이익 등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단’의 문제는 ‘미혹’의 문제다 (15절, 요이 1:7). 주님 한분 이면 족하다. 주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요이 1:7)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다면 우리 모두는 형제고 그리스도가 한 분인 것 처럼 한 몸, ‘교회’는 하나다.
주님, 현실적으로 갈리고 갈린 기독교에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할지, 또 제가 과연 손 댈 수 있는 문제인지, 그리고 과연 하나가 되는 것이 정말 필요한지, 혹은 가능한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에큐메니컬 운동같은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을 압니다. 그냥 이 문제를 덮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을 때가 많지만, 주님께서는 이 분열의 문제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음란의 문제와 동일하게 매우 싫어하심을 봅니다.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이 이미 망가지고 희망이 없어보이지만, 주님을 믿는 것 자체 하나로 서로의 차이를 용납하고, 교리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 한 영, 한 분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도와 주소서.